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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 4 - 이춘아

by 가자유성농장으로 2011. 9. 24.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 4 (2011년 9월23일자)

 

그런 거 말고 뭐 없나요

이춘아 한밭문화마당 대표

 

 

 

초등학교 때는 미술대회 가서 상도 타오고 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서 미술에 재능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경우는 엄마의 치맛바람 덕분이었다. 그 이후 모든 예술 장르는 전문가만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1993년 여성의 문화활동에 관한 조사를 하면서 참으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꿈을, 자신의 삶의 한 끄트머리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2003년 다시 조사를 해보니 10년 전 수강생이었던 사람들이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열심히 자신의 길을 만들어 온 사람들을 보면서 ‘여성들이여 문화소비자에서 문화생산자로’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자 하였다. 2005년경에는 문화생산자 라는 용어만으로는 부족한듯하여 문화창조자 라는 말을 덧붙였다.

 

 

올해 바로 며칠전 ‘나의 삶, 시가 되다’ 라는 프로그램에 참관하였다. 현학적인 제목일 수 있는 것들을 마침내 이루어냈다는 생각을 했다. 문학소녀였던 사람들이 뒤늦게 시창작 교실을 다니면서 등단하거나, 환경이 여의치 않아 그림에 대한 꿈을 접고 살다 중년이 되어 전시를 하는 분들도 보았다. 문화생산자, 문화창조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거 말고 그저 내 속에 있는 그 무엇을 끌어내어 표현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데 이제까지 우리는 사회가 인정해주는 자격증 같은 결과물로만 연결시켜왔기에 그 길이 아니면 별로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살아볼 만큼 다 살았다 여기고 있던 할머니들이 내 삶이 시가 되다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고비고비 넘겨온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강하게 다가오는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보기도 하고 시적으로 표현도 해보면서 그동안 뭉그러져서 알 수 없었던 자신의 감정이 꿈틀거리며 살아있었음을 느껴 볼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감동이었을 것이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문화를 이야기한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고 듣고 직접 해보면서 나도 예술가가 된 것처럼 멋도 부려본다. 일상의 예술이라는 표현이 그럴듯하긴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와 닿지 않았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 아무것도 아니라고 문질러버렸던, 기억 저편으로 가두었던 것들을 끌어내고 그 감정을 표현해보고 스스로 직면할 수 있는 시간이 먼저 있어야한다는 것을.

 

 

백발의 할머니가 자신만의 공책을 펼치고 필통에서 연필을 꺼내어 지우개로 지워가며 엎드려 글을 쓰고 있었다. 느낌을 오롯이 모아내는 시간이다. 깊은 우물에서 타래박을 내려 물을 올리고 있다. 예술의 시작이다.

 

 

-이춘아님은 현재 <농부와 함께 1년 과수 귀농실습>에 참가하면서 금산의 간디학교가 있는 마을로 귀농준비도 하고 있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