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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_귀농귀촌교육기관(2011~2018)/2011~2017 귀농귀촌교육 -카페동일

이춘아 귀농교육생이 쓰시는 글 - 대전일보 기고 9/9

by 가자유성농장으로 2011. 9. 11.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 2 (2011년 9월9일자)

 

매혹된 시간

이춘아 한밭문화마당 대표

 

 

 

그렇게 많은 단어들의 조합들 속에 살고 있지만 내 삶의 한 끄트머리를 이어주는 단어들은 열손가락을 넘지 못한다. ‘문화적 감수성’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도 그랬다. 그 단어를 들었을 당시 그 단어하나로 내 삶을 종지부 지을 것처럼 매달렸다. 책, 음악, 미술, 연극, 건축, 문화재 등의 강의와 함께 책을 읽고, 공연장 전시장 유적지 등 현장을 찾아다니며 그 느낌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보고 들었던 것들의 총합이 다가 오는 듯 했다.

 

 

잡힐 듯한 실체는 있었으나 뭔가 가로막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의 습관처럼 굳어져있는 모든 것들을 학습하려는 태도였다. 음악은 도레미파솔라 가르치는대로 배웠으되 그것들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소리를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 아름다운 소리를 만든 작곡가들의 이름과 작품이름을 외웠으나, 그가 왜 그런 음악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는지 알지 못했다. 조잡한 컬러인쇄물 속의 그림을 보며 인상파작가들과 작품 이름을 외워 시험을 봤다.

 

 

교과서에서 본 그림을 중년이 되어 현물로 보았을 때 그 아름다운 색감은 지금도 전율이 오를 정도이다. 영어를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하고, 알파벳부터 사전의 발음기호로 배워 영어시험을 보았던 우리는 천재들이었다. 수없이 넘겼던 습자지형태의 사전의 감촉과 손때만이 영어실력이었다. 제대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 학습된 영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부조화처럼 그렇게 예술적 장르를 접해왔던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하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하였다. 거짓말이었다. 시험 보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었다. 일벌레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개발도상국을 넘어섰다. 개발도상국을 넘어선 우리에게 부닥친 국가적인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영어 듣기와 말하기에 한이 맺힌 부모세대들이 아이들에게 온갖 미디어 매체물을 사들였고, 영어권 교사들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영어권 나라로 아이들을 보냈다. 물론 영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제는 창의시대, 온갖 체험에 아이들이 휘둘리고 있다.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을 보내긴 하는데, 왜 가야하는지는 없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만들었던 작품 속에서 자신만의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할텐데 떠밀리며 짜증나는 핸드마이크 소리의 학습된 해설을 듣고 있다. 좋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시간, 그 매혹된 시간 속에서 나만의 감성이 만들어지는 시간이 더 소중한 때이다. 그 감성만이 창의성으로 이어주는 실마리이다.

 

 

 

 

대전일보] 한밭춘추 (2011년 9월2일자)

 

삶의 한 끄트머리

이춘아 한밭문화마당 대표

 

 

“내가 뭐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묻는 중학생 아이에게 “나도 내가 뭐가 됐으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네가 뭐가 됐으면 좋을지 내가 어찌 알겠나” 라고 매정하지만 한심하게 답했었다. 아이가 크고 나니 뭐가 됐으면 좋을지 문득 생각이 나서 “네 성격 등을 고려해보니 갈등조정자가 됐으면 좋겠다” 라고 말해주었다.

 

작년에 나를 인터뷰한 기사에서 그 기자는 ‘문화 컨설턴트’라는 직명을 나에게 선물했다. 쑥스럽긴 하지만 그 직명이 좋다.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학4학년 때 학부 졸업논문제라는 제도가 생겨 나름 열심히 썼다. 제목도 정확하게 생각나지는 않지만, ‘만남의 집단(encounter group)에서 facilitator의 역할’이란 제목이었다. 아직도 facilitator를 정확하게 번역하여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촉매자 또는 조정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서 쌓인 경험으로 언제부터인지 그런 일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형태이지만 ‘갈등 조정자’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그런 일을 했으면 바라고 있지만 나의 바램일 뿐 그 아이의 몫은 또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다. 내가 뭐가 됐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으나 결국 그것은 20대에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고, 그 20대 역시 20여 년 동안 궁리하여 만들어졌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온 시간들을 들여다보면 의식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내 삶을 지탱하고 있는 한 끄트머리를 붙들고 살아왔던 것 같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은 짧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직업으로 만들면 무궁무진할 것 같은데, 여전히 사회가 요구하는 직명에 의존하여 자신을 맞추려 하다보니 어려워진다. 다양성, 창조성, 감수성, 통찰력 등을 요구하는 문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에 걸 맞는 직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실업률만 높아지고 있다.

 

이 시대가 대체로 합의하고 있는 능력은 단어로 말해지나, 그 능력을 발현할 수 있는 직종도 단어화할 수 있어야할 것 같다. 대학의 전공과목들이 다양해지고 있으나 직종화할 수 있고, 뭔가 잡힐 수 있는 이름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할 듯하다. 젊은이들에게 물어보자.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아마도 대부분 잘 모르겠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며 정말 하고 싶어진 것들을 찾아볼 시간을 준다면 답은 나올 것이다. 물어보자 하면서 여전히 현재의 직업과 직종들을 염두에 두면서 기존의 먹고 사는 방식으로 재촉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