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농촌사랑전국주부글잔치 우수상 (2008년)
제목 : 내 이름은 <전민동 배밭>
집에서 나와 자전거를 타고 밭에 가다보니 밭둑에 망초 꽃이 무더기로 피워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꽃집에서 파는 꽃 못지않게 예뻤지만 평소에 그냥 지나쳤는데 작고 하얀 너무도 흔한 이 꽃이 너무 예뻐 자전거를 멈추고 한참 쳐다봤다. 이런 것이 시골생활에서 느끼는 재미인 것 같다. 굳이 꽃밭을 가꾸지 않아도 많은 꽃들이 자기들 순서에 맞추어 피어난다. 이제 망초가 지고나면 달맞이꽃이 저 자리를 차지하겠지.. 큰 키에 가느린 몸을 하고 노란 꽃을 피우고 있을 달맞이꽃 향기를 맡으면서 밭에 도착할 것이다.
10년 전 서울에서 남편의 고향인 유성으로 내려왔다. 지금 살고 있는 유성은 대전에 속하지만 60%이상이 아직 농촌지역으로 남아있다. 남편은 유성배로 유명한 이곳에서 배 농사를 짓기로 했다. 더불어 나도 여성농업인이 되었다. 유성으로 내려온 그해부터 매일 남편 따라 어설프게 과수원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살 때는 4월이면 벚꽃 구경 갈 계획을 세웠고 못가더라도 주변 공원으로 가서 벚꽃 구경을 했지만, 배 농사를 짓고 농업인이 되면서 나는 벚꽃 구경은 꿈도 못 꾼다. 왜냐면 벚꽃이 배꽃 피는 시기와 비슷해서 인공수분 준비에 바쁘고 인공 수분할 시기에 날씨가 좋은지 아닌지 늘 긴장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배꽃이 더 예쁘다고 생각한다. 처음 농사짓기 시작하면서 남편에게 불평 한 적이 있었다.
‘배 농사를 짓고부터 벚꽃구경은 못가네’
남편이 간단하게 말한다.
‘배 꽃 보면 되지 뭘 그래’
맞다. 이제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가까이 벚꽃 축제로 시끌벅적해도 ‘뭘 저걸 보러가 배밭 가서 배꽃 보면 되지’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배 밭에서 배꽃 인공수분도 해주고, 그 일이 끝나면 어린 배를 솎아야하고 그리고 봉지 씌우기, 배따기 등의 일을 차례대로 해야 한다. 평생해보지 않았던 일들.. 밭에 가서 처음 내 손톱에 때가 낀 날 한동안 그 생경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아! 내 손톱에 때가 끼었네..' 오랜 도시생활로 손톱에 때가 낄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그날 이후 농사철엔 손톱 쳐다볼 시간도 없이 바쁘고, 설령 손톱에 때가 끼어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무뎌지게 되었다. 아마 이렇게 시골생활을 적응했나보다.
배 농사를 10년 넘게 짓다보니 이젠 나도 배전문가가 다 되었다. 신고배 뿐 아니라 배나무를 보면 무슨 품종의 배나무인지도 알게 되었다. 이 품종은 언제 유행했었고, 지금은 거의 없어진 것이며 각 품종별로 배나무 형태나 잎 색깔 모양이 다 다른 것도 구별해낸다. 농사를 짓기 전에는 배는 다 같은 배려니 했는데, 품종별로 맛도 다르고 모양도 다 다르다. 그리고 겨울에 앙상했던 배나무 가지에서 꽃눈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푸른색의 어린배가 자라면서 황금색으로 변하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특히 포도가 익어갈 때는 푸른색에서 빨간색이 되었다가 검은색으로 바뀌는 모습은 농민이기에 쉽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어떤 자연의 힘에 의해 저렇게 알록달록하게 색깔을 바뀌게 할까 하고 감탄한 적도 많다.
남편은 성실한 농사꾼이다. 어린 시절부터 집에 배 밭이 있어 거들다보니 자연스레 배 농사를 익혔고, 어머님을 닮아 하루 종일 배 밭에서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저녁 무렵 배 밭의 빈 공간에 심어 놓은 상추, 미나리, 고추, 가지 등에게 물을 주면서 하루를 마무리 한다. 덕분에 싱싱한 야채가 늘 밥상에 있고, 식사준비 하기 위해 상점으로 가지 않고 밭으로 가는 재미도 좋다. 지금쯤 어디쯤에 가면 전에 맺혔던 호박을 오늘은 따도 되겠지 하면서 보물찾기도 해본다.
하지만 농산물 가격이 일정하지 않아 아무리 열심히 농사지어도 가격이 낮으면 소득이 많지가 않다. 잘 파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 절실히 느껴서 이제는 100% 소매를 위해 노력한다. 남편이 열심히 농사지으면 나는 잘 팔아야지 다짐을 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고민해 봤지만 우리 배를 사람들한테 맛있다고 홍보를 하는 일이 남편이나 나나 서툴다. 둘 다 말 주변이 없는 편이다. 둘 다 성격이 비슷하니 생각만 소매로 100% 팔고 싶다 였지 제대로 되지를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간단하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블로그를 이용하는 것이다. 블로그는 <가자 유성농장으로> 이고 주인장 이름은 <전민동 배밭>이다. 이곳에 농장과 관련된 많은 글을 올리고 사진도 올린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칭해서 부를 때 전민동 배밭 아줌마라고 한다. 나는 그 호칭이 좋다.
농사를 짓다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모양이 안 좋거나 좀 일찍 수확해서 당도가 떨어지거나 하는 정품이 아닌 비품배가 생산된다. 이런 배는 헐값에 팔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배의 활용을 위해 흔히 배즙을 많이 짜지만 건강원에 맡기다 보니 수수료도 만만찮고 수확이 끝난 후 겨울철 농한기에 시간적 여유도 있어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이 없나 많이 고민하다가 지금은 배로 잼을 만든다. 배잼이라고 하면 대부분 배로도 잼을 만드냐고 관심 있어 한다. 언젠가 '배쨈 팝니다'라고 적어놓고 판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초등생이 엄마랑 지나갔다. 잠시 후 그 엄마 혼자 와서 배 잼을 사가면서 "우리 아들이 그러는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쨈이 배쨈 이래요" 한다. 그 초등학생의 발상 전환이 너무 재미있었다. 배를 농사짓는다고 하면 가끔 농담조로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바다에 떠있는 배도 있고, 먹는 배도 있고 우리 몸에도 배 있는데..". 배잼을 먹어본 분들은 굉장히 맛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유명 과수원에서 레시피를 교환하자는 제안까지 받았다. 노력하고 고민하니 느리지만 조금씩 발전해가는 것 같아 기쁘다.
요즘은 농업과 관련된 체험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여성농업인이기에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설프게 흉내 내는 것이 아니고 직접 농업 분야의 전문가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에 <솟대 만들기>가 있다. 솟대는 옛날 마을입구에 장승과 같이 많이 세운 것으로 높이 솟아있는 대 위에 보통 새 모양으로 나무를 깎아 올려놓는 것이다.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오리를 많이 사용한다. 오리가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다산을 의미하고 즉 풍요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우리 조상들이 만든 것처럼 크게는 아니지만 나뭇가지에 찰흙을 이용해 예쁘게 오리를 만들어 올려 보기도 한다. 풍년농사를 기원하면서 솟대를 만들고 나면 왠지 든든한 백을 얻은 것처럼 기분이 좋다. 마치 올해 농사를 잘 지어 부자농부가 된 것처럼..
이제는 유성이 너무 좋다. 어쩌다 한번 가는 서울행은 번잡하게 느껴져 볼 일만 보고 바로 내려온다. 유성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성온천이 있다. 또한 많은 명품 농산물들이 생산되고 있다. 우리 과수원에는 많은 풀들이 자라지만 토끼풀은 잘 볼 수 없었는데 올해는 수도가 옆에 한 무더기 토끼풀이 자라있었다 토끼풀을 보면 평소 습관대로 네 잎 크로바 있나 하고 살펴보니, 2~3초 후 바로 여섯 잎 크로바를 발견했다. 내 평생 처음 보는 여섯 잎 크로바였다. 그날 무지 기뻤다. 왠지 올해 행운이 넝쿨 채 굴러 올 것 같아..네 잎도 아닌 여섯 잎씩이나 되니.. 가끔 느끼는 이런 여유로운 생활이 농촌에 사는 농업인의 참 행복인 것 같다. 열심히 노력하고 기원하고 소망하면 반드시 여섯 잎 크로바가 내게 왔듯이 좋은 일들이 넝쿨지어 올 거라 믿는다.//
김미숙
*내게 원고를 쓰게 한 망초와 달맞이꽃*
막 피기 시작하는 달맞이꽃
6월말 원고를 쓸무렵 활짝 피워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시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예쁘다.
2009년 농촌사랑 주부글잔치 최우수상
2년 연속 본상
배나무 가지치기 - 김미숙(대전 유성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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